우리 교육의 빛과 그림자 교육 이야기


어떤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교육이 송두리째 잘못되었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한국의 교육이 지상에서 가장 문제가 많은 것처럼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지나친 폄하이고 과장이며 자학이다. 한국의 교육이 그렇게 형편없이 엉터리이기만 하거나 최악은 아니다. 세계의 많은 나라들 중에서는 우리나라보다 교육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나라들이 적지 않다. 지구상에서 좀 살만하다고 꼽히는 나라들의 모임인 OECD만 놓고 보더라도 그 가운데에서 한국의 교육이 평균 이상으로 평가된다. 관점과 기준에 따라서는 상위권으로 꼽기도 한다. 여러 가지 평가 기준들을 종합적으로 적용할 때 중상위 정도의 수준으로 분류되는 것 같다.  

실제로 한국의 교육에는 적지 않은 장점들이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양적인 측면에서 지식의 폭을 넓게 많이 배양한다는 것이다. 초ㆍ중등 교육에서 한국 학생들만큼 폭 넓게 많은 지식을 정형화하여 암기하며 적극적으로 습득하는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 필자가 프랑스 대학 3학년에 편입하여 유학을 시작하던 무렵에도 여러 나라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유학 온 학생들과 어울려 공부할 때 그 점을 실감하며 놀란 적이 있다. 예를 들어, 루이 14세가 절대 군주의 상징적 인물이며 그가 베르사유 궁전의 주인이었고 “짐은 국가이다.”라는 언명의 주인공이라거나 나폴레옹이 코르시카 출신으로 반동혁명을 거쳐 황제가 되었다가 엘바 섬과 세인트 헬레나 섬에 유배되었다는 역사적 사실들을 알고 있는 외국 학생들은 많지 않았다. 필자는 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 아주 기본적으로 배운 것인데 그것을 두고 프랑스 학생들조차도 프랑스 역사를 내가 자기들보다 더 잘 안다며 경탄할 때는 스스로 놀라며 뿌듯했었다. 우리나라 교육의 ‘힘’을 느꼈던 것이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 더 발전한 지금은 그런 장점들이 더 많아졌다고 볼 수 있다. 실속이 어떻든지 이런 저런 국제경시대회에서 한국 학생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는 소식을 우리가 자주 접하고 있는 것이 그런 증거 가운데 하나일지 모른다.

이렇게 한국의 교육에서 장점으로 나타나는 것은 주로 몇 가지 특징적인 요인들에서 비롯한다. 그 가운데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뜨거운 교육열을 바탕으로 하는 치열함이다. 이러한 치열함 때문에 학습자들이 많은 양의 지식을 놀랍게 소화해 낸다. 또한, 교육에 종사하거나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 긴장감 속에서 비교적 예민하고 부지런하게 임하는 편이다. 물론 총체적으로 볼 때는 문제점이 많다는 것을 더 강조해야겠지만 긴장도와 예민성이라는 점에서만 보면 한국의 교육풍토가 단연 돋보인다. 그런 조건을 강화하는 중요한 자극제가 바로 ‘입시’의 부담이고, 그것은 학벌주의와 맞닿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입시지옥’이라고 표현하는 교육환경이 다른 한편으로 장점을 낳기도 하는 것이다. 치열한 교육이 성장기의 학생들에게 극기와 도전과 생존의 능력을 배양시켜준다. 상황 적응 능력을 높이는 것이다. 한국의 교육 환경에서 일정 수준 이상으로 적응해낸 사람은 세계의 어디에 가든지 어떤 과제를 대하게 되더라도 쉽게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라도 문제를 해결하려는 내성을 갖는다. 집요함과 요령을 발휘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묘한 딜레마를 경험하게 된다. 치열함 속에서 교육적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보는 것이다. 빛과 그림자가 공존한다. 이런 사실 앞에서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장점을 결과론적으로 합리화하면서 경쟁을 미화하는 논리로 비약시키거나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단점에 민감해져서 현상 전체를 부정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차분하게 생각해 보면 그런 두 가지 경향은 모두 성급한 반응임을 알 수 있다. 한국의 교육 현실에 나타나는 치열함은 얼핏 보기에 하나의 본질인 것 같지만 사실은 두 가지 이상의 다른 본질적 뿌리를 가지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나름대로 순수하게 자발적인 ‘열정’이고, 다른 하나는 부조리하게 강요된 ‘생존투쟁’이다. 한국인들의 배움에 대한 열정은 사회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형성된 결과인데 그것이 갖는 잠재력은 교육의 창조성에 매우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오늘날 많은 선진국들의 교육이 교육대중의 의욕부진에 직면하고 있는 것과 비교해보면 그 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꼽는 나라들에서 뜻밖에도 취학율과 문맹률 등의 교육 지표가 많은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 교육 풍토를 형성하는 ‘배움에 대한 열정’은 장점으로서 잘 살려낼 가치가 있는 것이다. 다만 문제는 그런 열정이 부조리하게 강요되는 반교육적 경쟁과 결합하여 교육 자체를 왜곡시키는 것이다. 창조적으로 발현되는 것을 가로막으면서 엉뚱한 방향으로 빗나가 버린다. 그 여파로 사교육이 지나치게 팽창하고 상대적으로 공교육은 황폐화된다.

요즘 우리 교육을 신뢰하지 못하여 조기유학을 떠나는 어린 학생들이 많다. ‘기러기’ 가족이 늘어나는 것이다. 그런 현상은 한국 교육의 단점과 병폐에 대한 반작용으로 일어나는 것이라는 점에서 일면 이해되지만 사실에 대하여 적지 않게 오판하거나 과잉으로 반응하는 측면도 크다는 점에서 다시 생각해 볼 문제다. 필자는 미국에서 교환교수로 체류할 때 초등학교 5학년과 중학교 3학년 아들을 현지 학교에 보내어 공부시키며 미국 교육의 현실을 세심하게 관찰한 바 있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8년 가량 유학하면서 유럽의 선진 교육을 대표하는 나라 가운데 하나인 프랑스의 교육 현실을 나름대로 깊이 체험하였다. 그런 경험적 자료를 바탕으로 확인한 사실은 미국이나 프랑스의 교육에도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교육에서 얻지 못하는 장점들도 분명히 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교육에 비하여 오히려 부족한 점도 많다. 대개의 사람들은 외국의 선진 교육에 관하여 좋은 점들만 상상하지만 그런 장점들의 이면에는 피할 수 없는 단점도 많고, 특정 교육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그것이 무엇이든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필자는 미국 체류 기간 동안에 많은 조기 유학생들의 현지 실태를 접하고 관찰하면서 그 허와 실을 구체적으로 인지할 수 있었다. 대학 이전의 조기 유학생 대다수가 국내에서 한국학생들이 겪는 것 이상으로 많은 문제에 직면하며 방황하거나 일탈하는 현실을 생생하게 목격하였다. 그런 사실 때문에 국내에서 조기유학을 선망하는 많은 부모들이 갖고 있는 환상에 대하여 우려와 안타까움을 느끼게 되었다. 우리나라 어린 학생들의 조기유학 성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때 국내에서 교육을 받는 것보다 ‘성공적인’ 경우는 50%를 결코 넘지 못한다. 미국이나 프랑스를 비롯한 선진 외국의 교육이 종합적인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우리나라 교육보다 다소 나은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가족 전체가 현지에 체류할 기회가 있을 경우에는 당연히 그곳의 교육을 받아볼만 하다. 그러나 가족관계의 결손까지 감수하거나 많은 추가 비용을 들여가면서 조기 유학을 하는 것은 추천하기 힘든 일이다. 그런 희생의 가치를 조기유학으로 충분히 보상 받기는 힘들다. 모든 나라의 교육에는 그 나름대로의 장단점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이든 각 나라의 교육은 그 나라 사람들에게 더 큰 적응력을 갖기 때문에 한국인은 가급적이면 한국에서 교육을 받으며 지혜롭게 대처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유리하고 바람직한 결과를 얻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 교육에 관해 별로 걱정하지 않고 지금대로 해 나가면 되는 것일까? 다소의 단점은 당연히 감내해야 할 필요악인가? 그렇지는 않다. 한국이 지향하는 국가 수준이나 국민의 교육열에 비하여 상당히 부족한 점이 많고 무엇보다도 잘못된 점들이 많다. 적지 않은 장점들을 무력화하면서 단점과 문제점을 강화시키는 고질병에 걸려있다. 그런 모순을 빨리 해소하지 않으면 한국 교육의 선진화는 요원해지고 고통의 짐이 되어 버릴 것이다. 후진 상태에서는 ‘지옥’ 같은 교육이 일정하게 쓸모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선진사회로 나아가는 데에서는 큰 걸림돌이 된다. 각 나라의 교육마다 고유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나름대로 ‘고질병’과 같은 난제들이 존재하기 마련인데 그런 것을 어떻게 잘 해결하며 극복해 나가느냐에 따라 교육의 선진화가 가늠된다. 우리 교육에 그림자가 있다고 그것을 피하여 외국으로 가면 거기에는 더 낯선 그림자가 있게 마련이다. 바람직한 것은 우리의 현실에 실존하면서 우리 교육의 문제점들을 해결하며 더 나은 교육으로 변혁하는 일에 힘을 모으는 것이다.      

한국 교육의 빛과 그림자를 잘 가려서 그림자를 거두어 내고 빛을 쫓아 더 많이 밝혀야 한다. 질적인 진보의 변혁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림자의 정체와 본질에 관하여 객관적으로 철저히 인식하고 그로부터 과학적이고 현실에 맞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말하자면 우리 교육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입시지옥’의 근원을 해체하여 재편하는 일이 필요한데, 그렇다고 향학열 자체를 억압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된다. 소중하게 교육적으로 승화시켜 나가야 한다. 우리 교육의 저력으로서 그 열정을 건조한 입시경쟁에 쏟아 부어 소모시키지 않고 창조적인 교육의 활력소로 순화하여 착근시켜야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교육적 에너지를 엉뚱한 곳에서 마치 ‘블랙홀’처럼 흡입하여 부조리하게 소비해버리는 구조를 해체해야 한다. 교육체계의 혁신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부조리 사슬의 정점에 자리 잡는 고등교육, 즉 대학 교육의 재편이 필요하고, 그 중에서도 사회진출과 직업구조에 직결되는 본래 의미의 직업전문교육을 재정립하는 일이 급선무이다. 그것을 전제로 더불어 모든 급별 학교 교육을 정상화하면서 질적으로 진화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교육 정책은 그런 흐름에서 빗나가 버렸다. 장단점의 미시적 효과에 몰두하여 거시적 안목을 상실하였다. 부조리의 토대 자체를 재정립하며 근원적으로 처방하는 일을 제쳐 놓고 피상적인 현안들을 응급처치 하는 데에 급급함으로써 문제의 순환성만 오히려 강화해 왔다. 시지포스 신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것은 모두 근시안적이거나 즉흥적이며 정략적 경향 때문이다. 오늘날 이른바 진보주의 교육정책은 우리 사회에서 교육열의 존재와 그 장점을 충분히 수렴하지 못한 채 관념적 원칙에 매몰하는 오류를 범하고, 이른바 보수주의 교육정책은 뜨거운 교육열의 현실을 빌미로 그 열기를 부추기며 이용하는 이기주의와 인기영합주의에 흘렀다. 그리하여 현실에서 멀어지거나 교육의 본질에서 벗어난 정책들이 말만 무성할 뿐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제는 근원적이며 현실적이고 진정성 있는 정책으로 처방해 나갈 때이다. 그러기 위하여 교육자, 학생, 학부모, 교육관료, 정부가 모두 하루아침에 똑같은 의식에 이를 수 없어 다소의 편차와 이견은 있더라도 사실에 대한 인식과 해결을 위한 진정성은 공유해야 한다.


덧글

  • rumic71 2010/04/01 22:10 # 답글

    문제는 세계사도 국사도 제대로 아는 학생이 요즘 드물다는 거지요. 죽자하고 국영수만 하는데, 그렇다고 국어를 바르게 쓰거나 영어를 좔좔 읊는것도 아니고...
  • 파란돌 2010/04/11 13:09 #

    네, 그런 점이 있지요. 열정을 창조적으로 승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지요?
  • 시라유키 2010/04/01 23:57 # 답글

    학원에서 일하고 있는 저는... 우리나라 교육에 대해 안타까움을 많이 느껴요.
    창의력보다는 기계적인 부분을 더 키우라고 하는 것 같아서...

    하지만 참 좋은 글이에요 :)

    가정의 결손까지 감내하며 조기유학을 보낼 필요는 없다...
    정말 찬성해요.

    행복하지 않은 공부는... 공부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
  • 파란돌 2010/04/11 13:13 #

    예, 안타까운 교육 현실이지요. 그래도 절망하며 도피하기보다 현실을 고쳐 나가자는 것이 제 글의 취지였습니다. 아름답게 열정을 꽃피우며 행복해지는 교육을 위하여...
    늘 주시는 글에 고마음을 느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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