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사정관제, 정치적 오염을 우려한다 입장/논평/칼럼

   요즘 입학사정관제 때문에 교육계가 술렁이고 있다. 2009년 7월 27일 ‘제20회 특집 라디오·인터넷 연설·대담’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 내에 대학입시에서 시험이 없어지고 입학사정관 면접으로 모든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가도록 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데서 비롯하였다. 평소 교육개혁 운동에 참여하며 여러 해 전부터 입학사정관제 논의를 해 왔던 본인으로서도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다. 매우 예민한 교육문제를 다루는 방식에서나 추진하려는 제도의 현재 조건에 비추어 보거나 대통령의 발언은 자연스럽지 않고 상식을 벗어나서 당혹감을 자아낸다. 입학사정관 제도는 지금 시작 단계로서 아직 실험 과정에 있다고 보아야 마땅하다. 민감하고 복잡한 변수들이 많아서 관련 당사자들이 뜨거운 감자처럼 조심스럽게 접근해 가는 중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나 대학 사회에서나 아직 충분히 공감될 만큼 보편타당한 모형을 도출하지 못하였고 그 얼개와 밑그림조차 제대로 그려내지 못하고 있다. 그런 시점에서 대통령이 한참 앞서 가듯이 매우 구체적인 일정을 언급하며 100% 전면화를 공언하였다. 2002년도 대입제도 개선안에서 검토된 뒤로 2004년 10월 28일 노무현 정부에서 다시 ‘대입제도 개선안’ 발표를 통해 물꼬를 트면서 관련 논의가 진행되다가 사정관 활용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을 시작하자 2007년도에 10개 대학이 부분 도입하였고 그 뒤로 조금씩 확대되어 2009학년도에 16개 대학으로 늘어났고 코앞에 닥친 2010학년도에는 47개 대학이 참여하는데도 그것의 적용 비중이 아직 크지 않아서 전체 4년제 대학 입학생의 6%정도 적용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런데 앞으로 불과 3년 안팎의 짧은 기간에 100% 전면화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 가능할까? 시행범위와 구체적 일정 등 실무적 성격의 내용을 공론과 소통의 절차 없이 대통령이 서둘러 표명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공언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책임을 질 수 있는 것인가? 자칫 불투명한 조건에서 설익은 정책을 남발하여 과민한 교육현장을 불안하게 자극하며 혼선을 초래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등등의 물음이 생기며 상당한 우려를 느낀다.  

   입학사정관제는 진학의 관문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제도들 가운데 하나다. 이상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것은 관문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유럽의 일부 국가에서 그에 근접하는 제도의 사례들을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입학사정관제는 최선의 제도가 아니라는 점을 전제로 인식하면서 생각해야 한다. 공교육 정상화와 내실화 등 주요 교육현안 문제 대부분을 한꺼번에 해결해 줄 만병통치약이 결코 아님은 물론이고 입시문제에 국한해서도 특효의 수단은 아닌 것이다. 사교육 경감을 위한 관건도 아니다. 한 세기의 역사적 경험을 축적하며 이 제도를 선도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에도 그 도입 배경과 시행 과정에 매우 복잡하고 불미한 동기와 변수들이 개입해 왔고 현재도 만족스러운 제도로 완성되지는 못했다는 선례를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입학사정관제는 단지 차선의 입학전형 제도들 가운데 하나로서 한국에서 나름대로 시도해볼만한 가치가 있을 뿐이다. 입시 과열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현실의 한계를 극복하거나 일단 우회하기 위한 과도적 측면에서라도 진지하게 검토해 볼만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본인이 몸담고 있는 건국대학교에서도 부분적으로 이 제도를 도입하여 입학처장과 사정관 등 책임자들이 헌신적으로 노력을 기울이면서 학내외적으로 긍정적 반응을 얻고 있는 것을 직접 체험하고 있다. 그런 사례에서 보듯이 이 제도는 장점을 잘 살려 정착시켜 나가면 나름대로 성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입학사정관제가 장점과 단점을 모두 지닌 양날의 칼과 같아서 잘 쓰면 약이 되고 잘못 쓰면 독이 된다는 점이다. 한국의 교육 현실에서 긍정적 축으로 발전의 흐름을 탈 수 있을지 아니면 기대와 달리 부정적 축으로 쏠려버릴지 아직은 예측하기 힘들다. 한국의 특수한 현실을 감안한다면 단점에 더 민감히 반응하며 부정적으로 얽혀 갈 위험도 크다. 너무 예민해서 경직될 만큼 객관적 계량과 형식적 변별에 익숙한 한국사회에서 주관과 가치관 등이 탄력 있게 개입하는 이 제도를 원만히 수용하기까지는 많은 거부작용과 갈등을 거쳐야할 것으로 보인다. 입학사정관제는 기본적으로 절대 평가의 원리에 바탕을 두는 것이다. 학생 개개인의 개성을 통해 잠재력과 창의력을 발굴하기 위해 질적으로 판단하는 정성(定性)적 평가를 우선한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현장은 양을 따지는 정량(定量)적 상대 평가의 토양을 이루고 있다. 점수나 등수를 숫자로 따지는 데에 길들어 있는 것이다. 요즘에는 일제고사, 수능점수 공개 등으로 그런 흐름이 더 강화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상황은 입학사정관제에 잘 어울리지 않는다. 이질적인 토양을 이루는 것이다. 물론, 사정관 전형도 일정한 정량화의 절충이 가능하고 또 그것이 불가피한 면도 있지만 본래의 취지를 살리려면 상당한 정성적 토대를 갖추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한국의 현실은 그 반대 방향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제대로 여건을 조성하기 전에 섣불리 밀어 붙이다가는 큰 혼선을 빚으며 자칫 ‘교육대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이른바 상위권의 ‘일류 대학’들이 학교 이기주의에 빠져서 제도를 악용할 경우에 ‘고교등급제’, ‘본고사’, ‘편법선발’ 등의 변종으로 진화하여 교육현장을 교란시키며 사교육을 요동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점이다.

   그래서 이 제도가 부정적 방향으로 빗나가지 않게 성공적으로 착근 시키려면 성실한 준비와 신중한 정초의 과정이 필요하다. 열매를 따기 전에 씨앗을 잘 뿌리고 잘 가꾸는 일이 먼저 필요하다. 심층적 연구, 정확한 ‘시뮬레이션’, 치밀한 검증, 엄격한 관리체계와 제어장치가 요구된다. 입학사정관제는 결코 ‘완제품’처럼 수입해서 곧바로 써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각 나라의 상황에 맞게 개발하면서 공들여 완성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특히 교육 문제에 과민한 사회의 분위기를 생각할 때 사정관을 운영하는 대학 쪽이나 전형에 응하는 학생과 학부모 쪽 그리고 학생을 가르치는 교육현장 쪽이 모두 신뢰할 수 있는 토대를 정초시켜야 한다. 입학사정관제가 제대로 자리 잡아서 본격적으로 기능을 발휘하려면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선행 요건들을 갖추어야 한다.

   무엇보다 우수한 사정관들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현재는 사정관 숫자 자체가 절대 부족하고 그나마 확보된 사정관 중에서도 전문성을 풍부하게 지닌 인재는 아직 많지 않다. 앞으로 많은 재교육과 훈련 과정을 거치고 경험을 축적해 나가야 한다. 게다가 현재는 입학사정관으로 일하고 있는 대다수가 비정규직 신분이라는 점도 큰 문제다. 2009년 현재 정규직 입학사정관 비율은 10%를 겨우 넘기는 상태다. 불안정한 신분 때문에 전문성을 갖추는 데도 취약할 뿐만 아니라 대학 측의 불합리한 요구가 있을 경우에 휘둘릴 수 있어서 제도 자체도 왜곡되고 더 나아가 부정입학 등의 사회적 문제들도 불거질 여지가 존재한다. 사정관의 양적 확보, 질적 전문화, 신분 보장 등이 시급하다.

   다음으로는 사정 요소와 평가 기준 등을 합리적으로 갖춘 한국적 모형들이 구축되고 각 대학에서 탄력적으로 적용할 수 있게 입체적인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현재는 각 대학과 전문가들이 산발적으로 모색해 가는 단계다. 2009년 5월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제도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 사전공지, 서류심사, 심층면접 및 토론, 최종선발 등 '4단계 가이드라인'을 예시한 바 있지만 그것으로는 최소한의 필요도 충족시키기 힘들다. 갈 길이 아직 멀다. 지금까지 각 대학은 정부 예산을 지원받기 위해 형식적으로 제도를 도입하는 측면이 크다. 제도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 재정지원에 더 이끌린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제도의 내실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당장 2010학년도 입시에서 47대학의 2만여 학생들 입학사정관 선발을 물의 없이 잘 감당하기도 버거운 실정이다. 대학들의 협의체에 불과한 대교협이 각 대학에 대해 관리와 감시의 역할을 얼마나 잘 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하루 빨리 한국 현실에 잘 맞고 제도의 취지에 충실하며 교육적 기능에도 잘 부합하는 실천 체계를 입체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그리고 입학 사정관 제도가 정상적으로 착근하기 위해서는 사정 자료와 지원자를 제공하는 초중등 교육 현장의 조건들도 갖추어져야 한다. 모든 문제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기 마련이다. 우선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정성적 평가를 토대로 하는 입학사정 요소들을 제공하기 위해서도 인성교육과 지식교육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현재는 너무 정량적 평가를 염두에 둔 암기식 지식교육에 치중하고 있다. 상대평가를 의식하는 경쟁위주의 교육에서 탈피하여 협동과 개성을 살리며 창의교육을 활성화해야 한다. 일상적으로 정성적 평가에 적합한 서술식 내신 관리 제도의 정립도 시급하다.

   이렇게 입학사정관 제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성공 조건들을 성실히 갖추어 가면서 단계적으로 시행의 폭을 넓히고 본격적 시행을 예비해야 한다.  전면화 여부는 최종 단계에서 판단할 일이다. 입학사정관제는 굳이 이념적으로 말하자면 진보와 보수의 성격이 혼합된 것이다. 그래서 이념과 정파를 뛰어넘어 모두가 함께 정초시켜 나갈만한 사안이다. 먼저 전문가 집단이 소모적 논쟁을 벗어나 머리를 맞대고 심층적으로 연구하여 방향과 방법을 잘 제시할 필요가 있다. 현장의 당사자들이 스스로 실천 조건들을 정립해 가도록 성원하면서 정부는 여건을 조성하고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실적 쌓기에 이용하려는 욕심은 버려야 한다. 교육 분야에서 실적은 대개 시간차를 갖는다. 그것을 거스르며 억지로 앞당기려고 하면 오히려 일을 그르치고 국민들로부터 부정적 평가를 받게 된다. 정치권은 한 발 뒤로 물러나면서 전문가와 대학 당국 그리고 교육 현장 주체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야 한다. 교육 문제에서는 정치권이 너무 나서고 개입할수록 일을 그르치기 쉽다. 국민은 지금 정치에 시달리고 속아서 신뢰하지 않는다. 양치기 소년에게 속아 온 국민에게 이번 입학사전관제도 또 하나의 거짓 늑대라는 인식이 확산되어서는 안 된다. 모처럼 파쟁을 넘어 다수의 여론이 기대를 보이는 가운데 나름대로 성과를 얻을 수도 있는 제도를 정치적 오염으로 퇴색시켜서는 안 된다. 교육 문제를 다룰 때는 대통령, 장관, 실무책임자가 오로지 교육적 진정성을 가지고 주어진 지위의 비중에 맞게 역할하고 발언해야 한다. 특히 국정의 최고 의사결정권자인 대통령의 정책적 개입과 발언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말 한 마디에 수십만 학생․학부모․교원의 애간장이 끓고 수천억 원의 사교육이 부풀며 수많은 정책 관련 일과 사람들이 난경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의 교육 정책은 입학사정관제 자체에도 공을 들여야 하겠지만 그것의 성공을 위한 선행 요건과 더불어 더 본질적인 것들을 실은 먼저 천착해야 한다. 한국의 교육현실에는 많은 현안 문제들이 순환적 모순 구조를 이루고 있어서 문제를 하나씩 단편적으로는 해결할 수 없고 모순 구조 전체의 토대를 먼저 해체하면서 입체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하는 문제가 있다. 입학사정관제와 같은 입학전형 문제는 주로 대학에 들어가는 관문에 관련 된 것인데 그런 관문의 성격과 조건을 규정하는 것은 대학의 현실 즉 고등교육 체계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근본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현재 한국의 교육 전체를 왜곡된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는 고등교육 체계를 재편하고 혁신하는 것이 시급하다. 정부는 단편적 성과에 연연하지 말고 총체적 안목으로 성찰하면서 본질적으로 문제를 접근하여 풀어나가기 바란다. 그런 노력 자체가 국민에게는 신뢰감을 주며 좋은 선례와 업적으로 평가 받을 것이다. 


                                                                                                                                                      2009년 7월 28일

덧글

  • 감사합니다^^ 2011/02/11 22:35 # 삭제 답글

    감사합니다! 학생인데 써 주신 글 보고 입학사정관제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알아갑니다. 감사합니다^^*
  • 파란돌 2011/06/17 19:35 #

    답글이 너무 늦었군요. 반갑습니다^^ 유익하게 사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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