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을 향해 돌을 던져야 하나 ? 입장/논평/칼럼


   교육당국이 사교육을 잡겠다며 학원가를 몰아붙이고 있다. 심야학습 등 불법 행위를 신고하면 포상하는 이른바 ‘학파라치’제도까지 도입하였다. 강력한 처방으로 사교육 과열과 혼탁의 온상을 일시나마 평정할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이런 일은 과연 옳은 것일까? 세상 분위기가 어떻든 오로지 교육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진솔하게 답하자면 ‘아니다!’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학원가의 책임이 상당히 있는 것도 사실이고 탈법이나 불법으로 이루어지는 사교육 행위들에 대하여 단속과 관리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지만 요즘 ‘사교육경감대책’의 일환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학원 때리기’는 그 성격과 방식에서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겉보기에는 다소의 성과를 얻을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 부정적 효과를 더 많이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당국의 행위는 두 가지 측면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사안에 대한 인식과 진단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고, 둘째는 ‘교육’ 행정의 방법이 매우 ‘비교육적’이라는 것이다.

   먼저 인식의 오류부터 이야기해보자. 사교육을 잡기 위해서는 사교육의 수요를 유발하는 원인부터 해소해야 하는데 당국의 조치는 결과로서 나타나는 현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원인과 결과를 잘못 짚은 것이다. 사교육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원인이 사라지지 않는 한 사교육을 받고자 하는 학생들과 그것을 제공하는 주요 장(場)으로서 학원의 존재는 자연발생적이어서 피하기 힘들다. 학교 공부로는 모자라서 늦은 밤까지 더 공부하지 않을 수 없는 원인이 존재하는 한 학생들은 어디에서든 밤늦게까지 공부하도록 떠밀려 다니게 된다. 그런 원인을 해결하지 않으면 결과로서 발생하는 사교육의 부조리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어떤 ‘특단’의 충격 요법으로 일시적 효과를 거두더라도 본질적으로 원인 자체가 변하지 않는 한 결과의 총량도 변하지 않는다. 잘못된 원인 때문에 나타나는 부정적 결과를 억지로 막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원인이 존속하는 한 다른 형태로 변이되어서라도 결과는 지속된다. 억제되었던 몫은 사라지지 않고 상황에 따라 일시 잠재했다가 곧 증폭되어 나타나며 해결하기 더 어려운 형태로 왜곡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원인을 해소하지 않고 결과를 단속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분명한 오류다. 평소 일정한 규범으로 관리하는 일은 필요하지만 본질적 해법을 마련하지 않고 섣불리 일상적 사교육 활동을 억압하면 오히려 비정상적인 ‘지하 학원’ 등 변종 현상과 음성적 부조리가 더 기승을 부릴 수도 있다. 진정 사교육을 잡으려면 때와 곳을 가리지 않고 남보다 더 많이 공부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교육정책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 그런데 당국이 오히려 경쟁위주의 정책을 남발하여 사교육의 필요를 증가시키면서 그 결과로서 발생하는 과열 현상의 책임을 학생과 학원 탓으로 돌린다면 어처구니없는 일이 된다. 마치 덫을 놓거나 함정을 파놓고 거기에 걸리거나 빠지면 몰아치는 격이다. 당국이 정말로 그런 사실을 몰라서 오류를 범하고 있다면 무능을 드러내는 것이고, 문제의 본질을 알면서도 비난성 여론의 화살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자 학원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면 무책임성과 부도덕성에 대한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된다.
  
   이제는 방법의 오류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교육행정의 비교육성 문제다. 학원을 대하는 방법이 너무 경직되고 비인간적이며 어떤 면에서는 위선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학원가에서 불법과 탈법이 적지 않게 행해진다는 사실을 인정하더라도 그보다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학원도 교육의 현장이라는 점이다. 사교육도 ‘교육’이다. 어떤 필요에 의해서든 학생들이 배움을 얻기 위해 찾아가 시간을 보내는 곳이 학원이다. 학원을 다니며 겪는 모든 일도 학생들의 배움에 영향을 미친다. 학원에서 가르치는 강사도 학생들에게는 ‘선생님’이다. 그들의 대부분은 국가와 사회구조가 자신의 교육적 열정을 학교로 흡수하여 수용해주지 못하기에 떠밀려 왔거나 이미 교사로서 학교 교육을 담당해 보았으나 왜곡된 공교육 현장의 답답한 현실에 실망하여 뛰쳐나온 인재들이다. 학원운영자들도 대부분은 교육적 인성을 지니고 있어서 다른 분야 종사자들보다 교육적 규범을 존중하고자 나름대로 노력한다. 일반학교 교육에서 충족시키지 못하는 인성교육을 해결하기 위해 상당수 학생들이 대안학교를 찾듯이 학교가 만족시키지 못하는 지식교육이나 특기교육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학생들이 학원을 찾고 있다. 그렇게 기능적으로 본다면 학원은 학교에서 못하는 것을 뒤치다꺼리 해주는 곳이나 다름없다. 공교육이 최선의 길을 제대로 가지 못하는 현실에서 학원은 사교육으로 차선의 몫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학원종사자나 수강생의 존재 또는 그 과잉이 잘못된 것이라면 그 책임은 교육 당국에 먼저 돌아가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원인 제공자로서 당국이 스스로 원인 해소의 노력 없이 결과적 현상을 정죄하고 검증되지 않은 시책을 느닷없이 발표하면서 마녀 사냥 하듯이 마구잡이로 학원가를 몰아쳐서 불신과 죄의식을 만연시키는 것은 모든 당사자 개인들에게나 국가사회 전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교실이 무너졌다’고 학교 교육의 붕괴를 우려하는 터에 학원에서는 서로 불신하고 고발하며 범죄 현장을 드나드는 기분으로 학생과 종사자들이 생활하도록 만든다면 사회적 불행을 자초하며 더욱 키우는 것이다. 정확한 목표를 놓친 채 학원을 향해 섣불리 돌을 던지면 부조리한 교육 현실에 떠밀려 학원을 찾은 학생들과 선의의 종사자들이 먼저 더 많이 상처받게 된다.  

   학원의 난립과 부조리를 비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교육을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학원의 실태를 우려하고 있다. 더 나아가 하루 빨리 사교육 문제가 해결되어 학원에 관한 부담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를 대다수 국민이 간절히 원하고 있다. 완전히 해결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학원의 수요, 공급, 비용, 환경, 운영 등의 실태가 서민들에게 짐이 되지 않고 교육적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게 합리적으로 관리되기를 기대한다. 사교육 현장의 불법, 탈법, 편법, 비상식, 비교육 행위들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고 사회적으로 용인되어서도 안된다. 그런 점에서 학원 문제는 교육 당국이 꾸준히 고민하며 풀어나가야 할 과제 가운데 하나임에 틀림없다. 그 전제로서 요구되는 것이 바로 문제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해결 방식의 교육적 접근이다. ‘주객전도’의 과오나 비교육적 ‘밀어붙이기’는 피해야 한다. 과정은 교육적이면서 결과는 근본적 해결로 나아가는 것이어야 한다. 거칠고 즉흥적인 전시행정을 자제하고 교육적으로 관리될 수 있는 제도적 해법을 찾아 성실히 추진해야 한다. 합리적이고 엄격한 법률 및 조례 정비, 관리행정체계 보완, 자율정화체계 구축, 시민사회참여제도 마련 등 깊고 긴 호흡의 실질적 노력이 필요하다.

   이제 교육당국은 인식의 오류와 시행착오를 극복하고 보다 더 진정성 있는 자세로 사교육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바란다. 문제의 본질에 대한 정확한 인식 속에 합리적인 정책을 재정립해야 한다. 무리한 자기합리화를 되풀이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정책 실패에 봉착할 것이다. 그런 뜻에서 무엇보다 사교육을 부추기는 경쟁 지상주의부터 극복할 필요가 있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은 경쟁위주로 점철되고 있다. 대학입시를 위한 경쟁, ‘일제고사’에 따른 경쟁, ‘특목고’ 입학 경쟁, ‘자사고’ 입학 경쟁, ‘국제중학교’ 입학 경쟁, 기타 ‘특별한’ 학교 입학 경쟁, ‘학교선택’에 따른 경쟁, '조기영어교육' 경쟁 등등이 그런 사례이다. 이런 일련의 흐름이 결국 사교육을 부추기는 것이다. 교육에서 경쟁 과잉이 사교육 과열로 이어지는 인과관계를 누가 부인할 수 있는가? 그러므로 교육 문제를 경쟁위주의 논리와 정책으로 접근하면 사교육을 부추기는 결과가 된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일정한 경쟁이 불가피하다 할지라도 과도해서는 안 되고, 그것에 주로 의존해서는 더욱 안 된다. 당국의 새로운 성찰과 인식의 전환 그리고 성실한 정책 대안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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