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꿈을 향해 방랑의 길을 떠난 루소 문장 휴게실


  1728년 3월 14일은 일요일이었다. 그날도 루소는 작업장에서 일을 하였다. 점심시간에 두 친구들과 산책을 나섰다.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세 소년은 성문 밖으로 나섰다. 맑은 공기와 호젓한 풍경을 즐기며 한 없이 걸어 나갔다. 그렇게 답답한 일터를 벗어나 잠시나마 자유로운 기분으로 여유를 즐겼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아쉽지만 다시 작업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소년들은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걸어 온 거리가 멀었고, 그 사이에 시간도 너무 빨리 흘러갔다. 돌아갈 시간이 부족해 보였다. 서둘러 걸음을 재촉했다. 아직 성문까지는 5리쯤이나 남은 때인데 폐문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들렸다. 소년들은 다급한 마음으로 뜀박질을 하였다. 숨이 차오르고 땀이 흘렀다. 헐떡거리며 성문에 이르렀으나 이미 문은 굳게 닫혀 있고 문지기들도 보이지 않았다. 전에도 이런 일이 있어서 작업장 주인한테 매를 맞으며 혼났는데 또 같은 실수를 저질렀다. 소년들은 도시 밖에서 밤을 보내야 했다. 두 친구들은 작업장에 돌아가 주인에게 혼날 걱정을 하다가 체념하고 잠을 잤으나 루소는 전혀 다른 고민을 하며 밤을 지새웠다. 감옥 같은 작업장의 주인 뒤코모앵씨에게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루소는 평소에 느끼며 생각해 오던 것을 정리하여 성찰하며 새로운 삶을 위해 결단하고 실천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전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 일상과 일의 성격, 개성과 평등이 존재하지 않는 노동 조건, 주인의 비인간성, 사소한 일로 부당하게 벌을 받으며 자존심이 상하는 것에 대한 저항심 등이 그런 결심을 부추겼다. 사람은 얼마든지 자유로운 가운데 더 보람 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텐데 원하지도 않는 일을 강요당하며 보람 없이 사는 것으로부터 벗어나기로 하였다. 무엇인가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삶을 개척하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이튿날 성문이 열리자 두 소년은 일터로 돌아가고 나머지 한 소년 루소는 그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다른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루소는 어린 시절 여러 해 동안 함께 지내며 정을 쌓아 온 외사촌 형 베르나르를 만나서 자신의 결심을 털어 놓았다. 베르나르는 루소의 결심을 만류하지도 부추기지도 않았다. 대신 약간의 돈과 값나가는 검을 하나 건네주었다. 함께 살았던 외가의 식구들이 적극적인 관심과 도움을 주지 않고 방관자적 입장을 취하는 것에 대하여 다소 허전하고 섭섭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았으나 드러내놓고 원망하지는 않았다. 루소는 이제 모든 미련을 버려야 했다. 결심한 대로 정든 고향 제네바를 버리고 방랑의 길을 떠났다. 그 때 나이는 16살이었다.
 
   그동안 익숙해 있던 삶으로부터 벗어나 미지의 길로 나서는 것이 처음에는 두렵고 슬프기도 하였으나 또 그만큼 즐거움도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의 구속으로부터 독립하여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기뻤다. 그리고 남의 밑에서 마지못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개척하며 노력하여 멋진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었다. 소망하는 것들에 비하여 너무 불만스럽게 다가오던 현실을 벗어나 새로운 삶을 펼칠 수 있다는 기대로 마음이 벅차기도 하였다. 아직 설익은 나이기는 하였으나 루소는 부조리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도전하는 길로 나선 셈이다.

   며칠 동안 제네바 교외에 머물렀다. 안면 있는 농부들을 찾아다니며 얻어먹고 잠을 잤다. 그들은 루소를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시내의 부자들처럼 인색하지 않았다. 잘 나가는 상류층 사람들처럼 우월감으로 동정하지도 않았다. 순수한 마음으로 인간답게 대해 주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며 마음을 다잡은 뒤에 사보아 지역의 콩피니옹으로 갔다. 제네바에서 20리쯤 그러니까 8km 정도 떨어진 곳이다. 그 곳의 사제 드 퐁베르 신부에 대해 이야기 들은 적이 있기 때문에 루소는 그를 찾아갔다. 드 퐁베르 신부는 신교도가 모여 사는 도시인 제네바의 주변지역에서 가톨릭으로 다시 돌아오는 신자들을 돌보는 활동을 하고 있었다. 루소가 자신의 처지를 의논하였더니 퐁베르 신부는 친절히 대해주었다. 그리고 루소를 가톨릭으로 개종시키고 싶어 했다. 드 퐁베르 신부는 루소에게 안느시(Annecey)에 사는 바랑스(Warens) 부인을 찾아가도록 권유하였다. 가톨릭으로 개종한 뒤에 다른 개종자들을 돕고 있는 귀부인이었다. 루소는 개종할 생각은 별로 없었으나 드 퐁베르씨의 친절한 권유를 저버리기 미안한 마음도 있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무엇이든 부딪쳐 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어 안느시로 향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새로운 삶을 향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원래 콩피니옹에서 안느시는 멀지 않은 거리여서 하루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곳이었지만 루소는 3일을 소비하였다. 곧바로 목적지를 향해 직행하지 않고 배회하며 시간을 많이 보냈다.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었던 것이다. 무엇인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여정을 최대한 늘리고 지연시키며 걸었다. 여기 저기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거나 멋진 집이 보이면 일부러 찾아다니며 걸었다. 행복한 어떤 일들이 일어나기를 기대했다. 분위기 좋은 집 창문 앞에 서서 노래를 부르면 아리따운 소녀가 반하여 말을 걸거나 우아한 귀부인이 저녁에 초대해 주리라 믿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꿈 많은 10대 후반의 소년이 대부분 그렇듯이 루소도 다소 과장된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루소의 낭만적 성격이 방랑 소년의 상상력을 더 부풀렸던 것으로 보인다.

   루소는 선천적으로 부모들의 낙천성과 낭만적 기질을 물려받은 것 같아 보이는데다가 어린 시절부터 독서를 많이 하면서 풍부하게 키워낸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장미 빛 기대 속에 자립하는 삶의 여행을 시작하였다. 아직 막연하였지만 가슴과 머리속 어디에선가 싹트고 자라서 피어오르는 꿈들을 이루기 위해 아름다운 상상을 펼치며 첫걸음을 내딛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기대와 현실 사이에 상당한 괴리가 드러났다. 험난한 미래가 예고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루소의 새로운 삶은 우여곡절이 가득한 방랑의 시절을 거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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